이번 연재에서도 이어서 아스퍼거 증후군의 징후, 특징들에 대해서 알아 보겠습니다. 이번 연재에는 제 개인적인 경험담을 좀 많이 풀어볼 예정입니다. 아스피 개개인들마다 모두 다르겠지만, 처음에 저도 저와 너무도 다른 남편을 이해하기 위해 아스피 배우자 모임에서 다른 사람들이 겪은 이야기들을 듣는 것이 큰 도움이 되었거든요. 그럼 시작해 볼게요.
- 신체적인 면에서 서툰 모습을 보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손재주가 너무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 매우 직설적이고 다른 사람의 감정을 보호하기 위한 "선의의 거짓말"을 할 줄 모릅니다. 가령 청바지를 입은 당신의 엉덩이가 커 보이는지 궁금해서 물어본다면 당신의 AS 파트너는 다음과 같이 말할 것입니다. "당연한 거 아니야?"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으면 주저하지 않고 표현합니다. 이러한 행동은 모욕적이고 상처를 주려는 의도가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친절하지 않은 정직함은 잔인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렇게 말을 해 주어도 멈추지 않습니다. 이러한 무뚝뚝한 직설적인 정직함이 그들이 사회적인 스킬 부족을 나타내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아스피들은 이러한 직설적인 정직을 미덕이라 생각합니다. 아스피들은 정형인들이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사회적 필터를 전혀 쓰지 않고 생각하는 것을 그대로 말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 아스피 남성은 눈맞춤이 부족하거나 너무 강렬한 눈맞춤을 하거나, 얼굴 표정이 거의 없거나, 어색한 신체 자세와 제스처와 같이, 비언어적 의사소통을 비정상적으로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늘 너무 꼿꼿하게 앉아 있는다든지, 너무 짧은 보폭으로 걷거나, 좌우로 약간 비틀거리는 것처럼 보이는 걸음걸이를 하는 것과 같이 걷는 방식이 이상한 경우도 있습니다.
- 지나치게 형식적인 매너와 공손한 태도를 보일 수 있습니다.
- 손가락을 계속 치거나, 물건을 두드리거나 태핑하는 행동, 심지어 몸을 흔들거나 손을 퍼덕거리는 것과 같은 반복적이고 틀에 박힌 행동 습관이 있을 수 있습니다. 성인 아스피들은 이러한 행동 습관이 사회적으로 용납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를 숨길 것입니다. "자기 자극 행동(자폐에서 흔히 나타남)"으로 알려져 있는 이러한 반복적인 행동은 스트레스를 완화하고 부정적인 감정을 관리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위의 특징들 또한 모두 제 아스피 남편에게서 보이는 특징들입니다. 연애 초반에는 사실 이런 부분들을 잘 숨기고 있어서 크게 느끼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연애 초반에 아스피들이 가면을 쓰고 숨기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하루 종일 함께 사는 결혼 생활과는 다르기 때문에 데이트를 하는 시간에만 잠깐 가면을 쓰는 것이 가능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결혼생활을 시작하고 난 뒤, 이런 특징들을 곧 알아챌 수 있었고, 이 부분이 싸움이 커지는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첫 번째 특징으로 언급된 신체적인 어눌함 부분의 경우, 제 남편은 바닥에 앉는 자세를 잘 하지 못합니다. 아스피들은 운동을 잘 못하는 경우도 많다고 하는데 저희 남편은 그렇지는 않고 오히려 수영, 테니스, 사이클 등 잘 하고 즐기는 운동도 많습니다. 하지만 유연성이 극도로 떨어져 바닥에 앉는 자세를 아예 하지 못하고 팔꿈치로 상체를 지탱하며 반 눕는 자세만 가능합니다. 처음에 저희 부모님 댁에 인사를 가서 한국식 좌식 생활을 해야 했을 때 버릇없이 보이지 않도록 제가 설명을 해야 했는데 당시에는 아스피인 것을 몰랐기 때문에 호주에서 자라서 좌식 생활에 익숙하지 않다고 생각했었어요.
손으로 하는 것들도 매우 어색하고 서툴어서 심지어 결혼 전부터 시어머니도 저희 남편이 뭐든지 'rough'하게 한다고 말씀하시기도 했습니다. 당시에는 그냥 그런가보다 했던 부분인데 막상 같이 살면서 남편이 서툴게 해 놓은 마무리가 덜 된 집안일, 정원 손질, 청소 등등의 뒷 마무리를 해야 하는 입장이 되고 보니 한숨이 나올 때가 있더군요. 남자들이 대부분 그렇다지만 정형인들은 반복적으로 알려주면 (잔소리를 한다는 거겠죠 ㅎㅎ) 나중에는 제대로 한다던데 저희 남편의 전혀 개선의 여지가 없습니다. 빨래를 털어서 널고 구김을 펴는 것을 할 줄 몰라서 아무리 가르쳐 주어도 나아지지 않아 나중에는 그냥 빨래는 내가 하겠다고 했는데도, 고집스럽게 빨래를 하고 다 구겨서 널어 둡니다. 그냥 남편과 딸이 구겨진 티셔츠를 입는 것을 포기하고 신경쓰지 않는 게 제 정신건강에 좋겠다 결론 내렸습니다.
두 번째 특징은 한 마디로 '팩폭 날리기'라고 할 수 있겠네요. 저는 원래 새로운 아이디어가 넘치는 성향의 사람이고 그걸 이야기하고 나누는 것도 좋아합니다. 남편은 당연히 제 가장 가까운 사람이니 저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남편에게 신이 나서 이야기하고 싶어했습니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남편은 찬물을 끼얹고 사람 기분을 말 그대로 최악으로 만드는 재주가 있습니다. 무슨 아이디어를 이야기하든 남편은 항상 제 생각에 동조하거나 긍정적인 반응은 전혀 보이지 않고, 그게 왜 실현 가능성이 없는지, 왜 말이 안 되는지를 찾아내서 팩폭을 날립니다. 아스피인 것을 알기 전에는 이 부분 때문에 너무 많이 다퉜습니다. 기분이 상한 제가 왜 그런 반응을 보여야 하느냐고 화를 내면, 부정적인 감정을 듣거나 수용할 수 없고, 자신이 잘못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아스피의 특성상 되려 자기가 화를 내거나 대화를 거부하고 피해버렸기 때문입니다. 남편은 자신의 정직이 끝까지 미덕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아스피라는 걸 알기 때문에 싸움을 만들고 싶지 않아서 더 이상 남편과 아이디어를 공유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정말 필요하고 남편이 수긍할 수 있을 것 같은 내용들만 제한적으로 이야기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부분 때문에 남편과 정서적인 연결고리가 약하고, 충만한 관계를 쌓아가지 못하는 기분이 들어 불만족스럽습니다. 물론 남편은 이 부분에 대한 결핍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요.
'눈맞춤'이 자연스럽지 않은 것은 특히 아스피인 것을 알기 전에는 큰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쉬운 부분이었습니다. 늘 제 의견에 큰 이견이 없고, 가만히 들어주고 수긍하기만 하던 연애 때와는 달리, 결혼 준비 과정이 시작되면서부터는 제가 의견을 제시하고 내리는 결정들이 '우리'의 결정들이 되면서부터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중요한 결정을 함께 내려야 하는 순간에 대화를 하면서 눈길을 피하기 일쑤여서 대화에 집중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대화를 하다가 제가 화가 나서 대화에 집중하라고 화를 내면 상태가 더욱 나빠져서 촛점이 아예 없는 멍한 표정으로 손가락으로 코를 문지르며 반복적으로 냄새를 맡는 행동에만 집중(자기자극행동)하곤 했습니다. 아스피라는 것을 몰랐을 때에는 이 부분이 저를 거의 분노하게 할 때가 많았습니다. 결혼식 관련 결정, 함께 집을 사는 문제, 어느 병원에서 아이를 낳을지 등등 배우자가 무관심으로 일관하면 안 되는 '우리'의 결정에 있어서 남편은 늘 이런 모습을 보였고 저는 감정적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상황들이 최악의 갈등으로 치닫고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남편의 아스퍼거 증후군에 대해서 알기 때문에 남편에게 그렇게 까지 스트레스를 주는 대화 상황을 만들지 않고 만약 그런 상황이 되면 일단 대화를 종료한 뒤, 나중에 다시 정리해서 이성적으로 대화를 시도합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대화는 정서적인 교류가 있는 대화라기 보다는 결정을 내리기 위한 꼭 필요한 의논에 해당합니다. 적어도 이런 방식으로 최근에는 이런 저런 중대한 일을 결정할 때 덜 싸우고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남편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제가 변해야 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아스피 남편은 변할 수 없고, 제가 아스피 남편을 '자극' 시키기 않으면서, 아스피 남편의 대화와 교류 능력 부족을 염두해 두고, 필요한 정보만을 전달할 방법을 찾아야 했습니다. 이는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었고, 여전히 쉽지 않은 부분입니다.
이제 성인 아스퍼거 증후군의 징후, 특징에 대한 연재 마지막 1편만을 남겨두고 있네요. 다음 마지막 편 연재에서 또 찾아뵐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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