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퍼거 증후군과 사랑에 대한 넷플릭스 리얼리티쇼 - 러브온더스펙트럼 (Love on the Spectrum), 아스퍼거 남편과 시청한 후기

 오늘은 자폐 스펙트럼에 있는 사람들의 사랑을 찾기 위한 여정을 보여주는 리얼리티쇼인 러브온더스펙트럼 (Love on the Spectrum)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넷플릭스에서 개봉하기 전부터 저희 부부는 개봉일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저희가 살아가고 있는, 그리고 때로는 너무나 어렵다고 느끼는 바로 그 주제, 자폐와 사랑, 나아가 결혼을 주제로 한 프로그램이라 하니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실제로 시청하기 전에는 다른 영어권 국가에서 촬영된 것인 줄 알았는데 막상 시청해보니 저희가 사는 호주에서 만든 쇼였습니다. 덕분에 더 몰입도 있게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https://www.netflix.com/au/title/81265493

Love on the Spectrum | Netflix

 한국사이트 링크를 걸고 싶었는데 호주에서 접속하니 호주사이트로 연결이 되어 호주사이트 링크밖에 걸 수가 없네요. 한국에서 접속하신다면 자동으로 한국사이트로 연결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국사이트에서 본 프로그램에 대한 소개글은 다음과 같더군요.  

 

"사랑에 답이 있을까? 모두가 자신할 수 없는 연애.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젊은이들이 로맨스를 향한 낯선 모험을 시작한다. 복잡해도 괜찮아, 알쏭달쏭한 게 당연해!"

 

 호주사이트에서 본 프로그램에 대한 소개글은 다음과 같습니다. (한국어 번역이 생동감 있게 잘 되어 있어서 영문 번역은 생략해도 될 것 같습니다.)

 

 "Finding love can be hard for anyone. For young adults on the autism spectrum, exploring the unpredictable world of dating is even more complicated."

 

 두 소개글 모두 본 프로그램을 간략하게 잘 설명해 주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특히 자폐 스펙트럼을 접한 적이 없거나 잘 알지 못하는 일반 대중들에게 적절한 선에서 언급을 해 준 셈이지요. 물론, 프로그램 예고를 처음 접하고 제가, 그리고 남편이 생각했던 내용들은 이러한 소개글보다는 훨씬 더 복잡한 것이었지만요. 

 

 우선 개인적으로 자폐스펙트럼을 가진 사람과 정형인과의 로맨스를 그리는 것은 어떤 형태로든 정말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만약 이 리얼리티쇼가 그러한 내용을 담고 있다면 어떻게 이야기를 할지 무척 궁금했습니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 영화, 소설, 음악 등등 그 어떤 형태가 되었든 '로맨스', '사랑'이라는 주제를 다룬다면 이는 반드시 '낭만적'이어야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시대가 사랑하는 '낭만주의적' 사랑은 굳이 내 마음을 말하지 않아도 상대방이 나를 이해하고, 나의 모든 부분을 무조건적으로 포용하고 사랑하는 것이 가능한, 매우 비현실적인 사랑이죠. 공감능력이 결핍된 자폐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상대방의 눈빛만 보고 상대의 마음을 알고, 본인의 지나치게 예민한 감각과 이로 인한 스트레스 혹은 두려움을 모두 극복하고 상대방의 입장을 먼저 헤아리고 너그럽게 품어주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한 마디로,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모두 열광해 마지않는 그 '낭만적' 사랑은 모두에게 어려운 일이지만, 자폐스펙트럼을 가진 사람에게는 더더욱 어렵고, 어찌보면 불가능에 가까운 영역인지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정형인들에게도 일시적으로만 가능하거나 불가능한 경우가 더 많을 것 같습니다.) 때문에 거짓말이나 억지를 부리지 않는 이상, 자폐스펙트럼을 가진 사람과 정형인의 사랑을 그린다고 할 경우, 대중들이 원하는 로맨스가 그려질 리 없겠죠. 

 

 우리는 연애나 결혼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는 젊은 여성들에게 '넌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봤어' 라는 말을 하죠? 그리고 우리 모두 그런 비현실적인 낭만적인 사랑은 '드라마 속에나 있는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비현실적인 달콤함이 주는 만족감은 매우 강해서 중독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때로 현실에 좌절한 우리는 종교에 의지하기라도 하듯 그런 낭만적인 사랑을 믿고 싶어집니다. 그렇게라도 희망을 가지고 싶은 것일지도 모르죠. 그만큼 대중들은 (저를 포함해서) 낭만적인 사랑이야기를 좋아하고 비현실적일지언정 이를 원합니다. 그런데 낭만적으로 그리기가 무척 어려운 또는 거의 불가능한 자폐스펙트럼이 있는 사람의 사랑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면 대중들이 즐거워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죠. 그리고 나아가 정형인 배우자로서 그 안에서의 고충과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이를 너무 아프지 않게 그리는 것이 가능할지도 의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시청해보니 '러브온더스펙트럼'은 자폐인과 정형인의 관계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았더군요. 본 리얼리티쇼에서는 자폐인과 자폐인의 만남과 관계를 여려명의 자폐인들을 통해 보여주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평생의 반려자를 만나 너무나 행복해보이기도 하는 반면, 어떤 사람은 아직 한 번도 제대로 데이트를 해 본적도 없기도 했습니다. 물론 자폐스펙트럼은 너무나 광범위한 범주이기 때문에 출연자들마다 자폐의 정도도 다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은 고기능자폐스펙트럼, 즉 아스퍼거증후군을 가진 사람들이 나왔는데, 사실 아스퍼거증후군의 경우 학습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성장 과정에서 얼마나 행동교정을 받을 기회가 있었는지에 따라 사회화가 될 수 있으므로 그런 개인의 차이에 따라 사랑이나 연애, 인간관계에 대한 이해와 접근도 다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상황과 100% 일치하는 내용은 아니었지만, 저희 부부에게는 그래도 여러모로 흥미롭고 서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 쇼였습니다. 아스피인 제 남편은 사실 본 프로그램에 나온 다른 아스피들보다 훨씬 자폐를 가지고 있는 것이 잘 티가 나지 않습니다. 저와 결혼생활 중 발생한 갈등 때문에 진단을 받게 된 것이 아니었다면 아마 평생 자폐를 모르고 살았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제 남편이 자폐 진단을 받기 전까지 주변의 가까운 친구들과 친척들은 모두 전혀 남편의 자폐에 대해 의심해 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제 남편은 '러브온더스펙트럼'을 보면서 본인은 저 정도로 사회적인 교류를 어려워하거나 연애를 완전한 미지의 세계로 생각해 본 적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저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남편은 제게 출연자들과 본인에게 비슷한 점, 동일한 점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기는 해도 본인도 분명, 출연자들처럼 때로는 상대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본인이 적절한 언행을 하는지 잘 모를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본인보다 더 어려움을 겪는 출연진들을 보면서 때로 답답한 기분도 들었는데 그 때 제 생각을 했다고 하더군요. 제가 본인을 보면 그렇게 답답하다고 느끼지 않을까 싶다구요.

 

 제 입장에서는 남편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특히 처음 가 보는 격식 있는 레스토랑에서 긴장하고 데이트를 하지 못하고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여성 출연자를 볼 때, 상대방이 마음에 들지만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지 잘 모르는 남성 출연자를 볼 때, 남편도 저런 기분과 느낌, 생각때문에 난처하고 어렵고 힘든데 설명하지 못하지 않았을까. 그 동안 그래도 많은 부분에서 노력을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들이 들었습니다. 물론 그러면서도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즉흥적으로 무엇을 하는 것을 좋아하는 저로서는 계획한 대로, 예측할 수 있는대로 움직여야만 갑자기 폭발하지 않는 남편이 답답하고 고집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여전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러브온더스펙트럼'을 보면서 남편의 입장을 더 구체적으로 상상해 볼 기회가 되었다고 할까요.

 

 아쉬운 점이라면 조금 짧은 시리즈 구성, 그리고 자폐인끼리의 만남이 아닌, 자폐인과 정형인의 만남이 그려지지 않은 부분정도이겠네요. 하지만, 자폐에 대해 그리고 자폐와 사랑에 대해 다루는 작품들이 매우 드문데 사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물론 이를 풀어나가는 방식 또한 담백하고 사실적으로 적절히 이야기를 하고 있었기에 더 설득력이 있었겠지요. 나아가 우리 부부에게는 여러모로 서로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는 점에서 더 좋은 넷플릭스 쇼였습니다. 혹시 저와 비슷한 상황에 계시거나, 아스퍼거증후군이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물론이거니와, 직접 관련이 없으시더라도 새로운 시각의 새로운 이야기가 궁금하신 모든 분들에게 추천드리고 싶은 프로그램 '러브온더스펙트럼'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