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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피 배우자와의 결혼/정형인배우자 - 카산드라 증후군

나의 카산드라 증후군. 남편이 아스퍼거 증후군 (고기능 자폐 스펙트럼)이라는 것을 알게 되다 - 3편, 성인 아스퍼거 증후군임을 아는 것이 왜 중요할까

by 뉴로티피컬레이디 2020. 8.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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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편이 아스퍼거 증후군임을 처음 알게 된 2017년 당시, 한국어로 된 성인 아스퍼거 증후군, 성인 고기능 자폐 스펙트럼에 대한 자료는 거의 전무했습니다. 아스퍼거 증후군에 대한 자료조차도 많지 않았는데, 찾더라도 미성년의 경우 진단과 행동 교정에 대한 내용이었고, 대부분이 한의원이나 클리닉의 광고글이었습니다. 그리고 분명 '치료' '완치'라는 것이 될 수 없는 발달 장애를 두고, '아스퍼거 증후군 치료는 어떻게 하나요?' '아스퍼거 증후군 완치될 수 있습니다'라는 식으로 잘못된 정보를 전하며 광고를 하면서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거나 설명이 되는 자료는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결국 제가 도움을 받은 거의 모든 자료는 영어로 된 자료들이었습니다. 그래도 2017년 이후 더 많은 자료와 정보들이 접근 가능하게 되었고, 활발한 연구와 공유도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느낍니다. 한국에도 아스퍼거 남편을 둔 배우자를 위한 온라인 모임들도 생기고 꽤나 많은 분들이 본인의 경험담을 공유하며 어려움을 공유하시기도 합니다.

 

 남편의 아스퍼거 증후군에 알게 된 이후 3-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저는 아직 이혼을 하지 않고 남편과의 공존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울증이 심해져서 우울증 약도 복용하고 있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를 돌아보며 내면 아이의 상처와 원가정의 문제도 이해하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아직도 저는 공존과 성장, 성숙을 위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남편이 아스퍼거 증후군인 것을 알게 되었기에 이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물론 이 점을 남편에게도 납득시키고 나아가 진단까지 받게 하는 과정은 길고도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실을 알고 그에 맞는 해결책을 찾아 가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현재 성인인 많은 자폐 스펙트럼에 있는 분들은 특히 고기능 자폐에 해당한다면 본인이 자폐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경우가 상당히 많습니다. 자폐는 분명한 발달장애이고, 아무리 지능이 뛰어나고 고기능이라고 할지라도 마음이론의 부재로 인하여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이 원천적으로 결핍된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전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다리가 아예 없는 것과 다리가 아직 있지만 다른 문제로 걷지 못하는 것은 외적으로 큰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지만, 걷기 위해 휠체어가 필요하다는 점은 다르지 않습니다. 자폐 스펙트럼에서 고기능 자폐는 이와 같은 개념으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이 결핍된 발달 장애를 알지 못하거나,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부인하고, 결혼이라는 인간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것은 (마치 걸을 수 없는 상태의 다리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리가 아예 없는 사람과 비교하여 다리가 있기 때문에 겉으로 보기에는 정상적인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이유로) 자신의 장애를 모른 척 하거나 없는 셈 치고 휠체어의 도움 없이 걸어 보려고 하는 것과 비슷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아이가 돌 정도 되었을 때 남편이 아스퍼거 증후군을 알게 된 것은 정말 불행 중 다행인 일이었습니다. 적어도 이제 우리에게 휠체어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요. 물론 휠체어가 이미 장애가 있는 사람을 걷게 해 줄 수는 없습니다. 휠체어가 있다고 장애는 완치되거나 치료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함께 가려는 사람에게 힘을 좀 덜 들이고 상대방과 함께 동행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임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상대방에게 왜 멀쩡해 보이는데 걸을 수 없느냐고 화를 내거나 답답해 하는 일을 피할 수 있겠지요. 분명히 장애가 있는 사람에게 불가능한 일을 하지 못한다고 계속해서 추궁하고 화를 내는 것은 화를 내는 사람에게도 그리고 장애를 가진 당사자에게도 모두 너무 소모적이고 폭력적인 일입니다. 하지만 아스퍼거증후군은 겉으로 보기에는 정말 정형인과 아무런 차이가 보이지 않습니다. 정확히 알지 못한다면 이유도 모르고 아스피 배우자와 정형인 배우자 모두에게 이는 너무나 파괴적이고 폭력적인 관계가 될 수 있습니다. 

 그 동안 개인적으로 수많은 아스퍼거 배우자를 위한 모임에 직접 나가보기도 하고 온라인 상으로도 많은 교류를 했습니다. 한국 온라인 모임은 한 군데 교류를 나누고 있고, 대부분은 호주나 미국, 영국과 같은 영어권에서 개설된 온라인 모임입니다. 수많은 정형인 배우자들은 입을 모아 말합니다. 아스피 배우자와 사는 것은 정말 너무나 힘든 일이라고 말이죠. 깊이 공감합니다. 그런데 또 모두가 말합니다. 그래도 가장 중요한 것은 배우자가 아스퍼거 증후군, 고기능 자폐 스펙트럼에 있다는 점을 알고, 그것에 대해 정확히 아는 것이라고 말이죠. 이 또한 백 번 공감합니다.

 

 물론 제 경우에도 아스퍼거 증후군에 대해서 이해하고, 특히 남편에게 그러한 특징이 있다는 것을 슬퍼하거나 분노하지 않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었고, 여전히 그렇습니다. 자폐를 가진 사람들의 뇌구조가 다르게 얽혀있든, 정형인들의 뇌구조는 타인과의 교류, 공감, 나눔 등을 통해 사랑과 정을 느낍니다. 그리고 그러한 소통에 대한 기본적인 욕구도 존재하죠. 자폐를 가진 사람들의 뇌구조에서는 자연스럽게 나올 수 없는 이와 같은 관계에 있어서 매우 본질적인 부분의 결핍은 정형인 배우자의 입장에서는 너무나 큰 상실입니다. 그것이 상대방 배우자의 악의나 고의에 의한 것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그것이 아무렇지 않거나 괴롭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뉴로다이버스 커플 상담을 전문적으로 하는 미국의 Mark Hutten이라는 전문 상담사는 남편의 자폐를 알게 된 정형인 배우자의 감정적 변화의 첫 단계로 상실에 대한 슬픔을 언급합니다. 남편의 자폐를 알게 된 뒤, 설명할 길이 없던 관계의 갈등에 대해 실마리를 찾은 것은 다행이지만, 그것을 알면 알수록 정형인 배우자가 꿈꿔 왔던 부부, 결혼, 가정의 모습은 이 상대방과는 이룰 수 없다는 것이 자명해지기 때문이지요. 저 역시도 이러한 슬픔과 애도의 과정을 매우 격하게 겪었습니다. 다른 글에서 또 다룰 기회가 있을 것 같은데, 특히 제가 낭만적인 관계에 대한 기대감, 남편과의 관계를 위해 포기해야 했던 모든 것이 너무나 컸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남편이 아스퍼거 증후군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나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에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하필 나에게 이런 결혼 생활을 겪어야 하는 불운이 찾아 왔을까. 아무리 힘들고 어렵고 노력을 해도 내가 꿈 꿔왔던 소울메이트 같은 남편과의 삶은 꿈 꿔서는 안 된다는 것인데, 내 삶은 왜 이렇게 불공평한 것일까.. 등등 억울하고 답답하고 불공평한 것 같은 기분에 너무나 오랫동안 괴로웠습니다. 내 삶이 너무 슬프고 희망이 없고 애처롭고 가엽게 느껴졌습니다. 이는 제가 극심한 우울증에 빠지게 되는 큰 원인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이 아스퍼거 증후군이 있다는 것을 최대한 빨리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알기 전에 정형인인 제 뇌와 사고 과정에 근거하여 남편 행동의 원인을 추측하였기 때문에 알게 되었기 때문에, 남편에 대한 감정은 매우 부정적이고 분노에 가까운 것이었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상처를 받고 슬픈 마음에서 시작한 것이었지만 그러한 상처와 슬픔이 반복과 자기 방어 기제와 만나면 분노로 변하는 것은 순식간입니다. 적어도 남편의 상태를 알게 된 다음에는 앞서 설명한 상실감에 따른 우울은 있었지만 그것이 이전만큼 강한 분노로 남편에게 모두 직접적으로 향하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너무 힘이 들 때에는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운명이 찾아 왔을까 싶기도 했지만, 남편의 언행이 악의적이거나 고의적인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적어도 의식적으로 할 수 있었습니다. 몰랐더라면, 더 많은 세월 동안 남편에 대한 미움이 점점 더 쌓여서 관계 회복이 더더욱 어렵고 이미 이혼을 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얼마나 많은 분들이 제 글을 봐 주실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혹시 이 글을 읽으시면서 많은 부분 공감을 하셨다면, 아스퍼거 증후군, 고기능 자폐 스펙트럼에 대해 더 많이 알아보시고 가능하다면 전문가를 찾아 상담과 진단도 적극적으로 받아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아직 저도 공존을 위한 답이 있을지 치열하게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소중한 가정을 이루신 경우라서 모든 노력을 다 해 보고 싶으신 경우, 그리고 혹시 이혼이라는 결론을 내리는 경우라고 할지라도 관계의 문제에 대한 답을 알고 적어도 설명할 수 있는 이유와 실마리를 찾는 것은 본인과 배우자 모두에게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저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모든 분들에게 이 글과 블로그의 내용들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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