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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내면 돌아보기/우울증 극복

커블러 로스의 변화 곡선-남편의 아스퍼거 증후군을 알게 된 뒤 겪은 감정의 변화 2편

by 뉴로티피컬레이디 2022. 7.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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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포스팅에 이어 커블러 로스의 변화 곡선에 따라 남편의 아스퍼거 증후군을 알게 된 뒤 제가 겪은 감정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 이어가 볼게요. 

 

5. 실험 - 새로운 현실에 대한 최초의 연결

 우울증 약을 복용하며 조금 상태가 호전된 것도 있었지만, 판데믹 상황도 조금씩 나아져 가고 있었습니다. 심해진 우울증으로 직장에는 휴직계를 낸 상태라 시간적인 여유도 더 있었습니다. 당시 제게 이 시간적인 여유는 거의 생명줄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제가 업무로 바쁘면 제 시간만 바빠지는 것이 아니라 가족 전체가 몸살을 앓는 상황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남편은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것을 부담스럽다 못해 두려워 했고 아이는 상황이 어려워질수록 더더욱 심하게 보챘습니다. 제가 일을 잠시 내려 두고 오롯이 엄마 역할에만 집중하니 이러한 혼돈이 조금 잦아들었고 저도 비로소 한 숨 돌릴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 때 서서히 남편에게 공식 진단을 권유했습니다. 그 때까지 공식 진단 없이 감정적으로 남편의 아스퍼거 증후군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던 것은 사실 관계 개선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제 마음이 조금 차분해진 뒤에 드디어 남편에게 차분히 진단을 권유하고 설득할 수 있었습니다. 이 때까지 남편의 아스퍼거 증후군을 알게되고 난 최초 시점부터 3년 정도의 시간이 걸렸네요. 진단도 쉽지는 않았지만 사실 진단이 새로운 해결책을 바로 가져다 주지는 않았습니다. 아스퍼거 증후군 진단을 할 수 있는 전문가도 많지 않았지만, 그에 근거해서 관계를 어떻게 개선해야 할지에 대한 코칭을 받을 길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2022년 7월인 현재에는 미국 AANE라는 기관에서 진행하는 뉴로다이버스 커플을 위한 강의와 코칭 프로그램이 생겨 저희 부부도 이로부터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만, 당시에는 그런 강의나 코칭이 전무했습니다. 그나마 자폐스펙트럼에 대한 인식 수준이 높은 호주에서 이런 상황이니 한국을 비롯한 다른 아시아 국가들은 더 어려운 상황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도 진단 후 바로 어떤 도움을 받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남편의 진단으로 저희는 관계를 새로 바라보고 저도 새롭게 현실을 받아 들이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이 자신의 상태를 파악하고 받아 들였다는 점이 제게는 새롭게 현실을 받아 들이기 시작한 아주 중요한 계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남편의 아스퍼거 증후군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남편이 이를 인정하지 않고 부인한다면 관계 개선의 가능성은 매우 적으니까요. 

 

6. 결정 - 새로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배우고 더 긍정적으로 느낌

 남편의 진단 이후 조금씩 남편의 아스퍼거적인 성향에 대해서 부정적이지 않은 방향으로 터놓고 이야기하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나중에 다른 포스팅으로 한 번 다루고 싶은 주제이긴 한데 남편도 본인의 아스퍼거 증후군을 받아들이는 데 큰 어려움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남편에게도 이런 과정을 소화하고 내면의 갈등을 극복할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어쨌든 서로 뉴로 다이버시티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조금씩 다름을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성인 아스퍼거 증후군에 대해 읽었던 자료들에서 아스피들의 장점에 대해서 이야기하던 부분에 대해서도 이전과는 달리 긍정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그 전에는 남편에 대한 원망, 미움, 분노, 내 삶에 대한 절망, 좌절 등의 많은 감정들 때문에 그런 좋은 점이 있어도 소용 없고 결국은 나를 힘들게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만 들 때가 있었거든요. 

 

 사실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결혼 생활을 유지하려고 했던 가장 큰 이유는 딸아이 때문이었는데, 아이를 생각한다면 남편의 다름을 이해하고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해 보고 싶었고, 남편도 이에 동참해 주기를 간절히 바랬었습니다. 결국 남편은 사랑하는 딸아이의 아빠이고, 이 두 사람들은 제 소중한 가족들이니까요. 이것이 제대로 된 노력도 하지 않고 깨어진다면 더 큰 후회와 아픔이 남을 것 같았습니다. 

 

 제가 이런 마음의 결정을 하고 조금씩 태도를 긍정적으로 바꿔 가자 남편도 점차 긍정적으로 변화하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물론 제가 원하는 만큼 까지는 아니지만 제 말을 들으려 노력하는 경우가 늘어났고, 저도 비현실적인 기대치는 내려 놓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정형인인 저는 감정적 교류와 소통에 대한 아쉬움과 갈망이 있습니다. 이렇게 충족되지 않은 마음의 빈자리들은 여전히 시리고 아팠지만 이조차도 서서히 다루는 방법을 배워가는 과정이 시작되었습니다. 

 

7. 통합 - 변화가 통합됨. 새로워진 자아

 남편의 아스퍼거 증후군이 제 결혼 생활에 존재한다는 것에 대해서 슬퍼하거나 분노하거나 억울해하지 않고 수용하는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그런 시점이 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는 않은가 봅니다. 사실 극심한 분노와 슬픔을 계속 마음에 담고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스스로를 지키고자 하는 방어기제가 현실과 타협하고 새로운 현실을 수용하도록 하는 것이겠죠. 

 

 사실 위 번역문의 설명처럼 이 모든 일련의 과정은 정확히 단계별로 시간 순서대로 일어나는 것은 아니라서 제가 제 경험을 순서에 맞게 설명을 위해 쓰기는 했지만, 중간 중간 여러 단계의 마음들이 왔다 갔다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문득문득 현재 모든 상황을 수용한 상태에 다다랐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가끔 '티키타카' '꽁냥꽁냥'이 어려운 남편과의 관계가 서글프고 아쉽기도 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뉴로다이버스 관계에 있다는 사실이 지금 당장 이혼을 해야겠다거나 현재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이유가 되지는 않습니다. 누구든 완벽한 삶을 사는 사람은 없듯이, 그냥 제 현실 속에 있어 제가 늘 노력해야 하는 한 가지 어려움이었다가 때로는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제게 놀라운 기쁨을 주기도 하는 그런 존재라고 느낍니다. 

 

 그리고 이 과정은 제가 느끼기에 완전히 마무리 된 것이 아니라 여전히 진행 중인 것 같습니다. 또 남편과의 관계 뿐 아니라 이 상태에 이르기까지 제 내면을 들여다보고 스스로를 치유하는 과정을 치열하게 거치기도 했구요. 이 과정에 대해서는 개인차는 있겠지만 사실 상처가 없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생각이 들고, 아스피 배우자를 만나 결혼한 상당수의 정형인 배우자는 본인의 원래 성향이나 부모님과의 관계나 이전 인간관계 등에서 받은 영향으로 형성된 자아나 특성이 원인이 되어 아스피 배우자에게 끌린 경우도 많기 때문에 사실 많은 분들에게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치유하는 과정은 꼭 필요한 과정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단지 지금 현재의 관계 뿐 아니라, 현재 관계가 끝난다고 해도 향후에 만날 다른 파트너와의 관계를 잘 맺어가기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구요. 

 긴 포스팅의 결론은 저와 비슷한 경험을 하셨거나 상황에 있으신 많은 분들에게 끝날 것 같지 않은 터널 속에서 분노와 슬픔, 우울감을 겪고 난 이후에는 결국 어떤 결론에 다다르고 현실을 받아들이고 새롭게 살아갈 에너지를 얻게 되실 것이라는 이야기를 전해 드리고 싶습니다. 그 결론의 답은 상황에 맞게 스스로의 행복을 위해 내리시면 될 것 같습니다. 꼭 저처럼 결혼생활을 유지해야 하는 것만이 답은 아니라는 것인데요. 상황에 따라 아스피 배우자가 폭력 성향이 있거나, 경제적으로 큰 문제가 있거나 하는 등등 다른 결혼 생활을 유지하기 힘든 이유들을 동반하는 경우에는 헤어짐이 결론이 되실 수도 있겠지요. 아스피 배우자 모임에서 만나는 많은 정형인 배우자 분들은 전 남편과 이혼하고 난 뒤에도 여전히 이러한 감정 곡선을 겪으며 서포트 그룹에 오시는 경우도 많고, 그렇게 해서 결국 행복한 삶을 이어가는 경우도 많으십니다.

 

 어떤 결론에 다다르시든 그리고 본인이 정형인이든 아스피 배우자이시든 현재 겪고 있는 관계는 정확히 알고 이해하지 못하면 정말 어려운 것이 맞습니다. 그 안에서 겪으시는 많은 어려움과 힘든 감정들이 너무나 당연한 것이고 그 또한 언젠가는 지나가리라는 이야기를 드리고 싶네요. 그럼 다음에 또 다른 주제 포스팅으로 돌아오도록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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